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노구치 히데요 (문단 편집) === 부정당한 연구 === [[황열병]] 연구의 경우, 노구치의 발견했다는 원인균에 대해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 세균학자 [[막스 타일러]]가 조사한 결과 '''노구치가 발견했다는 병원균은 황열병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세균'''이었음이 드러났다. 타일러는 이후 연구를 지속해 황열병의 원인은 [[세균]]이 아니라 [[바이러스]]임을 밝혀냈고, 또한 노구치가 살던 때의 [[현미경]]으로는 '''바이러스를 발견하는 게 불가능'''했기에 노구치의 연구는 잘못된 것임을 입증했다. 황열병 연구가 틀린 것으로 드러나자 의학계는 노구치의 연구에 대해 대대적인 검증에 착수했다. 노구치는 생전에 [[소아마비]], [[트라코마]], [[광견병]]의 원인균을 발견했다고 발표했었으나 결국 이러한 발표들도 모두 '''검증 불가'''로 결론내려졌다.[* 소아마비는 [[폴리오 바이러스]], 트라코마는 [[클라미디아 트라코마티스]], 광견병은 [[광견병]] 바이러스가 유발한다. 이 중 클라미디아 트라코마티스만 [[세균]]이고, 나머지 둘은 이름 그대로 [[바이러스]]다. 바이러스는 병균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생명체다. [[생물학]]에서는 일반적으로 바이러스를 생명체로 분류하지 않는다. 음식을 섭취해 에너지로 바꾸는 능력이 없고, 번식에 반드시 숙주세포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생명체라기보단 되려 기계에 가깝고, 특히 [[박테리오파지]]는 생긴 것도 기계 같다.] 실은 노구치의 생전에도 이미 그의 연구에 대한 의혹이 일부 있었다. 그러나 사이먼 플렉스너 교수[* 사이먼 교수는 [[미국]]의 [[의학]] 교육 및 [[의사]] 제도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고 과학적 방법론에 입각한 의학교육을 주장하는 플렉스너 보고서를 주관한 교육가인 에이브러햄 플렉스너의 형이다. 사이먼과 에이브러험을 혼동하는 경우가 많은데, 어쨌든 에이브러험은 의사가 아니었으므로 의사이자 과학자였던 사이먼의 의학교육에 관한 견해가 이 보고서에 강하게 반영되긴 했다. 이 플렉스너 보고서는 록펠러 재단이 후원하여 만들어진 보고서로, 당시 의학교육에 자금을 지원하려던 재단이 대체의학과 근대과학적 의학 중 어느 측이 더욱 양호한 의료효과를 보는지를 파악하고 그러한 곳에 자금을 지원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작했다. 이 보고서의 영향력은 매우 커서, 그때까지 미국 의료계에서 한 몫을 하던 동종요법 등 '''[[대체의학]]들은 1920년대까지 모두 퇴출'''되었다가(당시 미국 내 대체의학교육 시스템은 매우 주먹구구식이었다.) 20세기 말에 이르러서야 간신히 부활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그나마도 플렉스너 시스템 하에서 육성된 근대과학적 의사들이 주관하는 정도. 게다가 이 보고서는 의학 외 다른 학문에서의 대학교육에도 매우 큰 영향을 미쳐서 결국 미국의 대학교육 개혁과 학문의 진보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어쨌든 이 정도로 사이먼 교수가 의학계에 대단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인물이었으니 그가 압력을 넣으면 다른 이는 감히 노구치의 연구를 파헤칠 수 없었던 것. 결국 권위가 만든 병폐라고 할 수 있겠다. ]가 그런 의혹들을 모조리 일축시켜 버린데다, 노구치의 연구에 대한 열정을 보아 설마하니 전부 오류일까, 라는 생각에 당시 다들 엄밀한 검증을 취하지 못한 게 그가 죽고 나서야 그의 연구 대부분이 검증 불가로 드러나는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대해서 [[연구]] 자체가 조작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노구치가 [[바이러스]]가 원인이라는 것을 알면서, 혹은 발견한 [[세균]]이 정말로 병을 일으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이런 발표를 했다면 확실히 '[[조작]]'이겠지만, 당시의 의학으로는 바이러스라는 개체가 있는지조차 몰랐다. 19세기 말 그 유명한 담배모자이크병 실험에서 '세균보다 작은 미생물이 존재한다'는 것이 증명되기는 했다. 하지만 바이러스의 존재를 발견하고, 그 모습을 시각적으로 발견하는 건 전자현미경이 발명된 후에나 가능했다. 결국 당시 의학의 한계로 인한 착오와 함께 노구치 스스로의 연구과정의 문제 등으로 인해 '특정 세균이 원인'이라는 잘못된 결론에 다다랐을 가능성이 높다. 심지어 당시 노구치는 자신이 개발한 [[황열병]] 백신을 스스로에게 투여했었다고도 한다. 당시 시대상을 알 수 있는 대표적인 예시로서, 노구치가 죽기 2년 전인 1926년에 [[노벨생리학·의학상]]를 수상한 요하네스 아드레아스 그리브 피비게르가 있다. 그는 [[기생충]]인 S.carcinoma가 [[암]]을 일으킨다는 실험적 연구로 [[노벨상]]을 수상했으나, 실제 인간의 암 발생 메커니즘과는 전혀 일치하지 않았다. 노구치가 살던 100년 전 그 당시는 과학적인 연구 등이 급격하게 태동하던 시대로, 과학적 방법론과 권의주의적인 일부의학계의 한계로 인해 사실 관계를 확실히 검증하지 못 한 채로 틀린 결론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도 [[노벨상]]까지 받은 연구는 얼마든지 있었다. 즉 [[현대|현대인]]의 시각이 아닌 100년전 당시 시대상으로 감안해 보면, 노구치의 연구에 틀린 내용이 있었다고 해서 지나치게 비난할 만한 것은 아니라는 것. 1927~1928년에 그의 연구가 잘못되었음을 지적하는 논문 3편이 발표되어, 노구치가 잘못된 원인균을 발표하게 된 것은 [[황열병]]과 [[렙토스피라병]]을 혼동했기 때문임이 드러났다. 원인균 이전에 질병 자체를 잘못 판단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부분은, 그 덕분에 오히려 노구치가 개발한 [[백신]]을 렙토스피라병에 대해서는 유효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소아마비 병원체, 광견병 병원체, 황열병 병원체에 관련된 그의 업적은 사후에 부정 당했으나, [[뱀]] [[독극물]]의 혈청에 관한 연구, 진행성 [[마비]] 환자의 뇌병리 조직에서 [[매독]] 병원체를 발견한 점, 페루 [[사마귀]]와 오로야 열이 같은 질환의 증상임을 증명하는 등, 여러 의학계 연구를 활발히 진행한 선구자적인 의학자라는 점에서는 인정받고 있다. 이러한 공로로 [[브라운 대학교]], [[예일 대학교]], 파리 대학교, 산 마르코스 대학교 등의 여러 명문대에서 명예 박사 칭호를 수여받기도 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